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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2011/07/08 19:02

* 질문들
     개요
     사태 일지
     김진숙은 누구인가
     그녀는 왜 크레인에 올라갔는가
     정부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희망버스는 무엇인가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는가

1. 개요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이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35m높이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7월 8일로 184일째 고공농성 중인 사건.

2. 사태 일지
2010.12.15 : 사측, 생산직 직원 400명 희망퇴직 계획서 노조에 통보
2010.12.20 : 노조,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 돌입
2010.12.28 : 노조원 1천100여명 4일간 정리해고 반대 철야농성
2011.1.6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크레인 고공시위에 돌입
2011.1.7 : 부산지법, 크레인 시위 김진숙씨에게 퇴거 결정
2011.1.12 : 사측, 희망퇴직거부 생산직 290명에 정리해고 통보
2011.1.13 : 부산 야4당, '한진重사태 논의 기구' 제안
2011.1.16 : 경총, 한진重 구조조정 외부개입 중단 촉구
2011.1.19 : 부산지법, 크레인 시위자에 하루 100만원 부과 가처분 결정
                사측, 크레인 시위자 등에 1억원대 손배訴 제기
2011.2.10 : 사측, 11∼14일 추가 희망퇴직 접수
2011.2.11 : 부산시.상의.시민단체, 한진重 정상화 촉구
2011.2.14 : 노조간부 2명, 추가 크레인 시위 돌입
                사측, 부산 영도조선소·울산공장·다대포공장 등 3곳 직장폐쇄 단행
2011.3.23 : 사측, 해고자 재취업 지원 협의체 제안
2011.5.9 : 사측, 노조원 퇴거ㆍ출입금지 가처분 신청
2011.6.9 : 부산경총, '한진중공업 파업' 정상화 촉구 성명
2011.6.12 : 외부노동,사회단체로 구성된 '희망버스' 한진重 방문, 
               사측이 고용한 용역들과 충돌해 24명 부상
2011.6.13 : 부산법원, 한진重 노조원 퇴거.출입금지 결정
2011.6.15 : 경찰, 희망버스 충돌 관련 배우 김여진 등 25명 출석 요구
2011.6.16 : 이채필 고용장관 한진중공업 전격 방문, 자율해결 촉구
2011.6.22 : 국회 환노위, 29일 한진重 청문회 개최 의결
2011.6.23 : 영도구청, 한진重 주변 외부 단체 천막 철거
2011.6.24 : 사회원로.단체대표 한진重 문제해결 촉구 시국선언
2011.6.27 : 노조, 총파업 철회ㆍ업무 복귀 선언

자료출처 : KBS뉴스 한진重 노사분규 사태 일지http://news.kbs.co.kr/society/2011/06/27/2314305.html

 

3. 김진숙은 누구인가.

Posted by FlyingWhale
느낀것/부스러기2011/06/14 01:48

B. 브레히트 - 소시민의 칠거지악

 세상이 근대의 물결을 맞으면서 기독교가 지배하던 중세적 도덕관념이 희석되었다. 자만, 탐욕, 호색, 시기심, 대식, 분노, 게으름 등 기독교적 도덕관념에서 말하는 일곱 가지의 죄악들은 자본이 지배하는 시대가 오면서 완전히 반대로 변하게 된다. 중세에 미덕이라고 평가되던 가치들이 오히려 죄악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이 작품에서 자본이라는 신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본을 많이 가진 사람들만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반대로 가난한 소시민들은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까지도 상품화시켜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안나들은 돈 없이는 원하는 것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소시민을 상징한다. 자유롭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심지어 먹고 마시는 것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안나I은 그러한 자유는 부유한 사람들이나 누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나II는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팔아 가족들의 집을 짓는다. 안나II가 고통받을수록 가족들의 집은 한 층 한 층 올라간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춤을 추지 못하고 오로지 돈을 가진 관객들이 원하는 수준 낮은 춤을 출 수밖에 없다. 야비함과 불합리에 저항은커녕 일자리를 위해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한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통하는 이야기 같다. 현대인들은 끊임없이 자신과 서로의 외모를 평가하며, ‘얼짱’, ‘꿀벅지등 외모를 숭배한다. 날씬하고 탄탄한 매력적인 몸을 만들기 위해 마음껏 식사하지 못하고 심지어 거식증으로 건강을 잃기도 한다. 자신의 신념과 정의는 현실 앞에서 무너지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작중의 안나II는 지금의 아이돌과 소름끼치도록 흡사하다. 인간 그 자체가 상품이며, 사람들은 그/그녀를 상품으로서 구입한다. /그녀들은 먹고 마시는 것은 물론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해야 한다. 만인의 연인인 그들은 연애 또한 금물이다.

 이는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삶일까. 자신의 주체적인 삶보다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자유로운 것일까. 반대로, 이것을 거부하여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돈의 유혹을 떨쳐내어 마치 수도승이나 히피처럼 사는 것이 자유로운 것일까. 양 극단의 무엇도 진정 자유로운 것인지 의문이 든다. 결국 우리는 사회적으로 체화된 규율에 따라 행동하지만 스스로의 가치관과 정의에 따라 외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우리를 옭아맨 자본의 권력에 전면적으로 저항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알고 판단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Posted by FlyingWhale
느낀것/부스러기2011/06/14 01:47
T. 슈토름 - 백마의 기사

 작품은 2중의 액자 구조로 시작한다. 아마도 슈토름 본인으로 보이는 맨 첫 화자, 그리고 그가 회상하는 기억 속의 여행자, 그리고 또다시 여행자는 교장 선생에게 백마의 기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왜 이리 복잡한 구조를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 맨 처음 들었다. 아마 실제로 슈토름 본인이 주워들은 전설을 각색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과, 이렇게 화자를 두 번이나 교체하는 구조가 이야기에 객관성을 더 부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사실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우케는 외롭고 고된 싸움을 한다. 부인 엘케가 아니었다면 그는 진정 혼자였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장애를 가졌고, 이상에 비해 현실의 벽은 높아 일은 산더미같다. 게다가 그는 가장 어려운 두 상대를 가지고 있다. 바로 자연과 광기이다. 자연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가장 강력하다. 물은 마을의 생명줄인 동시에 마을을 한순간에 송두리째 파괴할 수 있는 이중적인 존재이다. 하우케는 제방을 통해 자연을 극복하려 한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 하우케-하이엔 제방을 통해 증명된다. 하지만 그는 더 힘겨운 적을 만난다. 마을 사람들의 비협조적 태도와 미신적인 믿음은 하우케의 일이 진척되는 것을 극도로 방해한다. 이것은 일종의 광기라고 볼 수 있다.

 마을사람과 하우케는 비이성과 이성의 극단에 서 있다. 제방을 쌓는 작업 도중 개를 묻는 등의 미신적 행위는 하우케의 분노를 일으키고, 계속된 서로간의 불신과 몰이해는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한다. 이런 구조는 마치 농민들의 지위를 혁신시키기 위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가 오히려 신고와 박해만 받은 러시아의 나로드니키들을 연상시킨다. 조금 다른 점이란, 하우케는 심지어 마을 사람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을사람들의 배척뿐만이 아니라 하우케 스스로의 고립주의가 그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고독하고 외로운 혁명가를 떠올렸다. 자연이라는 항거하기 힘든 거대한 힘. 살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이 힘은 동시에 무서운 속성을 가지고 있다. 대다수 민중들은 그에 저항하기를 체념하며 오히려 싸우자고 선동하는 혁명가를 배척한다. 시간이 흐른 후 결국 그의 노력은 헛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지만 이미 그의 일생은 비극적인 종말을 맞은 뒤이다.

 여기서 슈토름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뭘까.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담담하고 사실적인 필치로 쓰여진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파우스트와 같은 어떤 인간의 전형을 소개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우케는 초인적인 의지와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다. 반면 마을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현실에 순응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극명한 대비와, 결국 바른 선택으로 판명나는 것은 행동하는 인간인 하우케의 선택인 것으로 끝나는 줄거리. 이는 슈토름이 생각하는 더 나은 인간이란 자신의 신념을 믿고 행동으로 증명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또한 그런 타입의 인간의 한계라는 것을 동시에 주장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Posted by FlyingWhale